안녕하세요 김성희님 ! (10)

안녕하세요 김성희님 ! (10)



이메일(jewelryask@gmail.com)
등록일 : 2013.01.28



Q.안녕하세요, 김성희님.


저는 서울의 주얼리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최인영(가명)입니다. 우리 공장은 규모가 작아 단독 매장은 운영하지 못하지만 자체 디자인을 생산해서 전국의 주얼리 매장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경기가 좋지 않아 누구나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은 뻔한 사실인데 어떤 매장분들은 제품을 주문하고 바로 이삼일 안에 물건을 달라고 하기도 하고 몇 푼 안되는 공임이나 조각비용을 깎아달라고 우는 소리를 해서 우리를 매우 난처하게 만들곤 합니다. 맘 같아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말하고 싶지만 그러면 또 소문이 잘못 나서 공장 문을 닫아야 할 지도 몰라 이익이 없어도 문제를 만들지 않기위해 일단 해달라는 대로 받아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외국에서도 공임 측정이나 제작 기간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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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안녕하세요, 김성희입니다.
90년대 중반에 종로에서 일할 때 제품을 주문하면 5일만에 출고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누구나 그 속도로 제작을 하는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건 번갯불에 콩구워 먹는 속도라는 것을 유럽에 와서 알게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속도로 제품을 납품하지 못한다는 얘기죠.

회사의 규모(직원 수와 체계)와 제품 제작의 난이도에 따라 소요되는 시간은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유럽에서는 주문에서 출고까지 약 30~40일이 걸립니다(한 제품일 경우에는 약 2주). 주문한 제품도 여러가지고 다른 많은 회사들의 주문을 받는데다가 아침 8시 30분부터 12시, 2시부터 6시까지의 근무시간을 철저히 지키기 때문입니다.

1월 중순에 비첸자 전시에서 주문하면 2월 말이나 3월 초에 제품을 받습니다. 납품기간 30일이라고 말은 하지만 두 달이 걸리는 때도 적지 않습니다. 주문서에 항상 ‘급!’이라고 쓰지만 다 헛겁니다. 공임은 또 오죽 비쌉니까? 보석조각 없이 금제품만 취급하는 회사는 그램당 공임을 측정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제품마다 공임이 따로 측정되어 있습니다(보석박힌 완제품의 경우 조각비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컬러스톤 등 메인 스톤 없이 파베 다이아몬드만 박힌 경우 브랜드가 아닌 이상 1캐럿 당 천 유로 정도). 목걸이 공임만 5천 유로(약 7천 5백만원) 넘는 것도 있습니다. 이렇게 높은 공임에도 불구하고 꼭 그 제품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구입하게 됩니다.

어떤 이탈리아 회사는 높은 공임을 주문장에 적고 마지막에 20~30% 공임을 할인해줍니다. 할인은 우리를 최고의 고객으로 생각한다고 믿게하는 하나의 속임수인데 차라리 처음부터 할인된 공임을 주는 것이 더 정직해 보인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요즘엔 중국 회사의 공임도 많이 올랐습니다. VS 파베 다이아몬드를 박은 18K 금 주얼리는 이탈리아 아렛조의 공임보다 비쌀 때도 있습니다. 게다가 중국사람들은 30% 선금을 받고 배송도 잔금을 모두 받아야만 해주기 때문에 은행 송금에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습니다. 저는 1월에는 중국이나 홍콩 회사의 주문을 절대 삼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설날 연휴가 겹쳐 출고시기가 연장되기 때문입니다. 1월 비첸자오로 전시회에서 홍콩 회사에 주문한 제품을 5월 비첸자오로가 시작될 때 까지 못 받은 경우가 두 번이나 됩니다. 선금 낸 것 때문에 목 길게 빼고 독촉하며 기다리긴 했지만 그 후로 다시는 이 회사에 주문을 안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몇년 후 우연히 만난 회사의 오너가 왜 오더를 더 안하냐고 묻더군요.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오래 기다려서 받은 제품들이 잘 팔리면 그래도 기다린 보람이 있지만 유행이 지났다거나 진열장의 천덕꾸러기로 남는다면 그 회사와는 인연이 없다 생각하고 발걸음을 돌리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박차를 가해 제작 시간을 줄일 필요도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서두르다 보면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빨리 만들려고 하다보니 보석 조각이 엉성하게 되거나 마무리가 잘 안 되거나 하는 등 완벽하지 못한 제품이 출시될 가능성이 많아지지만 그래도 날짜를 맞췄으니 품질 검사는 건너뛰고 일단 출고합니다. 매장에서는 고객에게 제품을 팔아 빨리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지만 이렇게 빨리 만든 제품을 착용하다가 보석이 빠지기라도 하면 고객은 주얼리를 구입한 매장으로 돌아와 수리를 맏겨야 하는 번거로운 발걸음을 해야 합니다. 매장 주인은 자신이 재촉한 것은 잊고 하자있는 제품을 구입했다는 생각에 이 제품을 출시한 공장에 무료로 수리를 요구한 후 나쁜 소리 몇 번 하고 껄끄러운 마음에 더 연락을 하지 않습니다. 공장은 직원들을 희생시켜가며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고도 좋은 소리 못 듣고 인내심과 돈, 기회를 잃게 되는겁니다.

주얼리란 감동을 주는 의미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손상되거나 하자가 나면 착용한 사람은 사랑에 금이 갔거나 부적의 효능을 상실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제품보다 완벽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품 출시에 소모되는 짧은 시간은 우리 사회가 ‘빨리 빨리’라는 고질병에 걸려있는 한 고치기 힘든 악습이라 생각합니다. 며칠 더 기다린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 없다, 천천히들 하시라고 말하고 싶지만 요즘같이 어려운 상황에 고객 한명이라도 붙잡아야 하는데 무슨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는거냐는 말을 들을 것이 뻔합니다. 하지만 해외 명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제품을 얻기 위해 몇 달이고 기다리는 것을 보면 최종 소비자는 기다려 줄 거라 생각되지 않으신지요.

기다리는 것도 미덕입니다. 수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좋은 품질의 제품, 꼭 그 제품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멋진 제품을 정성껏 준비하는 것이 공장과 매장, 그리고 최종소비자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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