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디자이너는 완벽한 창조자가 아닌 상대적 창조자



2014년 7월 24일 목요일


진정한 디자이너는 완벽한 창조자가 아닌 상대적 창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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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하이주얼리 브랜드 메종 아주엘로스(Maison AZUELOS)
세르지 아주엘로스(Serge Azuelos) 사장 인터뷰
등록일 : 2014.04.14


1920년대 중반 이삭 아주엘로스(Isaac Azuelos)가 처음으로 모로코 페스(Fes)에 공방을 낸 후 90년이 지난 지금, 아주엘로스는 모로코에서 가장 존경받고 사랑받는 하이주얼리 브랜드로 성장했다. 아주엘로스는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 본사를 두고 카사블랑카와 라바트에 5개의 단독 매장을 갖고 있으며, 시장에 맞는 자체 디자인으로 매년 약 250가지 신상품을 선보인다. 아주엘로스 주얼리는 18k 금제품에 VVS 등급의 다이아몬드만을 사용하며 50만원부터 수억원대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을 구비하고 있다. 특히 모로코를 대표하는 전통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매년 발표해 국가를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주얼리디자이너 김성희 씨는 10년째 아주엘로스의 수석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다음은 지난 9월, 비첸자오로 주얼리 박람회 기간 중 그녀가 하이주얼리 브랜드 ‘아주엘로스(AZUELOS)’의 세르지 아주엘로스 대표와 럭셔리와 디자인에 관해 나눈 담화에서 그의 의견을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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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디자이너는 창조적인 사람이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완벽한 창조자는 디자이너라기보다는 예술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디자이너의 문제는 소비자와 시장을 ‘이해’해야 한다는데 있다. 디자이너는 판매 가능한 물건을 창조해야 한다. 팔리지 않는 물건을 디자인한다면 그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동시대 예술가다. 진정한 디자이너, 즉 탑디자이너는 현재 소비자(시장)의 취향을 잘 파악하고 시대적으로 약간 앞서가는 디자인으로 소비자를 사로잡을 제품을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소비자가 그 제품을 봤을 때 “바로 이게 내가 원했던 거고 지금까지 찾아다녔던 거야!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아챘어?”라고 탄성을 지를 제품, 소비자가 요구한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예측한 제품 말이다. 소비자가 요구한 제품을 제작하는 것은 이미 늦다.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제품이 뭔지 스스로도 모르기 때문에 주문·제작할 수 없고 그 뭔지 모르는 것을 찾아다닌다. 그렇기 때문에 그 요구를 미리 간파하고 그에 맞는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가 진정 훌륭한 디자이너다. 디자이너는 사회의 변화를 직감하고 소비자의 생각과 요구를 미리 읽어내야 한다. 즉 디자이너는 ‘상대적(Relative) 창조자’여야 하지 ‘완벽한(Absolut) 창조자’여서는 안 된다. 디자이너는 시장과 고객의 요구에 따라 좌우되는 창조자여야 한다. 이기적으로 ‘내 디자인을 좋아하면 사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가라’는 식의 나르시스트 같은 생각은 디자이너에게 옳지 않는 생각이다”

-창조적 디자이너보다 똑똑한 디자이너를 말하는 건가?
“똑똑하다는 말은 여러 형태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상품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는 열린 마인드의 똑똑함이 요구된다. 즉, 시장의 요구를 듣고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동시대 사회의 경향을 감지하며 패션과 유행의 변화와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똑똑함, 시대의 불황과 정치적 불안을 이해하는 똑똑함은 소비자의 시각과 사고방식, 삶의 방식을 바꾸는 요인들이기 때문에 소비자의 요구가 바뀌게 된다. 같은 고객이라도 2년 전과 현재의 요구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모든 것이 이해된 상황에서 디자인을 해야 상품성이 있는 디자인을 할 수 있게 된다. 시대 상황이 좋을 때라면 소비자는 비싸고 큰 물건들을 자신 있게 구입해 사용할 수 있지만 불경기에는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더라도 남의 시기나 질투어린 시선 때문에 맘대로 물건을 구입하기 힘들다. 그래서 새 제품을 구입하더라도 뭔가 심플하고 겸손한 제품을 찾게 된다. 결국 시대상황, 경제상황, 정치상황과 같은 모든 것들이 신제품 개발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자료를 수집하고 열린 자세로 새 제품을 창조해야한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자신만의 스타일이나 개성을 갖지 않는 것이 낫다는 말인가?
“예를 들어 국제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들은 확실한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다. 이들은 시간이 지나도 스타일을 바꾸지 않고 이 동일성 안에서 변형을 시도하며 소비자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브랜드들은 성공적 마케팅을 통해 이미 대중에게 익숙해지고 확고한 위치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에 그들의 스타일을 찾고 선호하는 소비자들에게 ‘우리는 동요하지 않고 항상 같은 이미지를 유지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런 브랜드들 사이에는 진정한 창조력 대신 변형이 존재한다. 누구나 알 수 있듯 유명한 메이커의 제품은 대부분 스타일이 고정되어 있으며 그 안에서 그 스타일을 사랑하는 많은 소비자들을 불러 모은다. 그렇다면 이런 회사들은 어떻게 마케팅 하는가? 이들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스타일에 대한 구조를 만들고 그것으로 유행을 만든다. 수십 년 동안 제작·판매되는 제품을 기본으로 최상의 퀄리티를 유지하며 고정고객들이 떠나지 않도록 베이직한 상품 스타일 안에서 컬렉션 제품을 개발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스타일이 고정되어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 다양한 변화가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스타일이 지속되다보면 소비자는 지루해한다. 예를 들어 브랜드의 반복되는 모노그램 사용에 지루함을 느낀 소비자는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유명 브랜드의 모노그램은 브랜드의 가치를 높여주기 때문에 브랜드는 이를 의무적으로 삽입해 제작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디자이너라면 이런 동일한 스타일이 계속되는 유명 브랜드에서 계속 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로고나 스타일이 고정되지 않는 다른 회사들에 비해 창조의 범위가 넓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제품보다 마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 다른 종교, 다른 환경에서 사는 전 세계의 소비자들이 같은 제품을 좋아하고 구입하는 것이 제품이 예뻐서라고 생각하는가? 소비자가 아이덴티티가 강한 브랜드의 제품을 찾는 이유는 제품의 디자인이 아름다워서라기보다 강한 아이덴티티에 이끌려서다. 이는 즉, 마케팅디렉터가 디자이너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가 티파니 반지를 구입한다면 그는 마크에 이끌려 간 것이지 제품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간 것이 아니다. 그는 곧 마크가 주는 감동을 구입한 것이지 제품을 구입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브랜드들의 기업광고는 마크가 제품에 앞선다. 그래서 글로벌 브랜드에게는 마케팅 창조력이 제품의 창조력보다 중요하다”

-그렇다면 마케팅 없는 글로벌 브랜드는 상상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렇다. 마케팅이 없다면 글로벌 브랜드는 사라진다. 프랑스 패션 브랜드들이 향수 마케팅에 1억 달러씩 쓰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며 그에 대한 이익은 엄청나다”

-브랜드가 가질 수 있는 리스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브랜드는 유지가 어렵다. 브랜드는 성장하지 않으면 망한다. 21세기에 들어서 거의 대부분의 브랜드는 국제화되었다. 브랜드를 유지하려면 국제적 규모의 마케팅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자본이 필요하다. 전 세계에 브랜드를 알리려면 더 많은 판매망이 요구되며 시즌마다 신제품을 개발해야 하고 전 세계 시장에 유통시켜야 한다. 브랜드는 아티스트(Artist: 브랜드 대표 디자이너)가 이끌어가지 아티잔(Artisan: 만드는 장인)이 이끌지 않으며, 아티스트에게는 마케팅 전문가가 필요하다. 루이비통이 마크 제이콥스를, 샤넬이 칼 라거펠트를 수석 아티스트로 두고 마케팅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이런 브랜드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는 바뀌지만 브랜드는 유지된다. 구찌의 톰 포드, 디올의 존 갈리아노가 더 이상 대표 아티스트로 활동하지 않지만 브랜드는 같은 이미지와 스타일을 유지하며 운영되는 것이 바로 좋은 예다. 이는 메이커 이미지가 창조력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것이 받쳐주지 않을 때 브랜드는 지속될 수 없다. 그래서 브랜드화는 위험하다. 만에 하나 잘 못 운영하면 브랜드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탈리아 브랜드들이 럭셔리 그룹에 흡수되는 것은 브랜드 유지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많은 이탈리아 브랜드는 창업자가 죽은 후 사라지거나 다른 그룹으로 흡수되었다”

-로컬 브랜드들의 입장도 같은가? 
“나처럼 국제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로컬 브랜드들의 입장은 다르다. 우리 같은 로컬 브랜드들은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글로벌한 브랜드들처럼 국제적이지 않기 때문에 한 스타일 안에 갇혀있을 필요가 없다. 또한 스타일에 대한 단 하나의 아이덴티티가 없기 때문에 다양한 스타일의 제품을 제작할 기회가 있다. 적은 인구 안에서 비슷한 취향의 셀렉션 된 고객들을 상대로 비즈니스하기 때문에 중국의 대기업들처럼 수십, 수백 명의 디자이너를 두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스타일의 디자인을 할 필요는 없다. 브랜드가 아닌 회사라도 수백, 수천 명의 직원을 두고 전 세계로 수출하는 대기업이라면 다른 문화, 다른 종교, 다른 마인드를 가진 전 세계의 고객을 대상으로 그들이 좋아할 수만 가지 다른 제품을 제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회사의 이름이 아니라 제품 디자인으로 승부해야한다. 이들은 문화나 종교, 능력, 배경이 다른 다수의 디자이너를 필요로 하지만 우리 같은 로컬 브랜드는 단 한 명의 디자이너라도 우리 고객과 시장을 이해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글로벌 브랜드에는 훌륭한 마케팅 전문가가 필요하고 로컬 브랜드에는 훌륭한 디자이너가 필요하다”

-한때 성행하던 유럽 주얼리 브랜드들이 21세기에 들어 힘들어 하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나?
“유럽의 브랜드들은 스스로 국제 브랜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은 로컬 브랜드, 혹은 그 나라의 주얼리 메이커일 뿐이다.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 유명하다는 주얼리 브랜드도 다른 나라에 잘 알려진 브랜드는 거의 없다. 이런 브랜드들이 낙오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무엇보다 중국, 브라질, 인도, 터키, 태국 같은 나라와의 경쟁이 무척 심해졌다. 이는 럭셔리 브랜드의 OEM뿐만이 아니라 일반 메이커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프랑스의 유명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들이 특히 이탈리아 회사들에게 하청을 줬지만 요즘은 중국이나 태국으로 바꿨다. 중국이나 태국에서 독자적으로 개발된 제품들은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디자인이지만 낮은 가격과 자주 출시되는 다양한 디자인 덕분에 유럽 진출이 가능해졌고, 이제는 유럽 시장에도 아시아 스타일의 주얼리가 난무하게 되었다. 더구나 중국이나 태국 회사들은 이런 디자인의 단점을 파악하고 유럽 디자이너를 고용하면서 이제 디자인 면에서도 유럽 스타일과 다를 바 없어졌다. 그런데 많은 회사들은 디자인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는다. 나무에 비료를 주지 않고 열매를 얻기 바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불황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디자인 상품 개발이다. ‘메이드 인 브랜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메이드 인 크리에이션’이 중요한데 많은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주얼리 메이커들은 둥지를 틀고 앉아 기다리기만 하기 때문에 불황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제품의 질도 태국이나 중국의 회사들에 비해 큰 차이가 나지 않고 오히려 떨어질 때도 있다. 최종 소비자에게는 물건을 구입할 때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는지 보다 샵 주인의 신뢰도가 더 중요하다. 주얼리 제작, 보석 세팅, 그리고 가격 면에서 태국 회사들이 유럽 제조업체들보다 훨씬 낫다. 게다가 태국 회사들은 겸손하다. 80년대만 해도 체인을 구입하려면 이탈리아에 와야 했다. 예전에는 이탈리아 주얼리 시장이 디자인 스타일과 기술면에서 전 세계를 장악하다시피 했지만 그 때는 태국 회사나 중국, 터키 같은 경쟁자들이 없었다. 하지만 현재 체인 기계 없는 나라는 없다. 이는 이탈리아 회사들이 다른 나라에 체인 기계를 팔아서가 아니라 신제품 창조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지 않아서다. 그래서 유럽의 작은 메이커들은 예전 같은 영광을 되찾기 힘들게 되었다”

-디자인과 창조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다. 그렇다면 품질은 디자인 다음으로 중요한가?
“주얼리 같은 럭셔리 제품을 파는 사람들은 감동을 파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합리화, 기능성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감동을 파는 사람이다. 스마트폰 같은 테크놀로지 시장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품질보다 더 중요한 것이 디자인이다. 디자인, 품질, 그리고 그 다음이 가격이다. 왜? 만일 한 제품의 디자인이 아름답고 새롭고 신선하면서 소비자에게 감동을 줬다면 가격은 마지막 문제가 된다. 내 고객들에게 신상품이 나왔다고 연락하면 그들은 “예쁘냐, 안 예쁘냐”라고 묻지 “비싸냐, 안 비싸냐”라고 묻지 않는다. 가격이 저렴해도 디자인이 예쁘지 않으면 반값에 준다 하더라도 그 물건은 팔리지 않는다. 제품의 품질과 가격은 디자인이 주는 감동 다음의 문제다. 단, 품질은 프로정신을 의미하며 디자인과 함께 공존해야한다. 이것이 미의 이론이다. 고객은 아름다운 것, 예쁜 것을 좋아한다. 잡지나 TV 광고, 주변 어디를 봐도 예쁜 모델, 예쁜 색상, 예쁜 제품과 패키징, 멋진 사이트를 사용하지 일부러 못생기고 미운 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 예쁜 것, 아름다운 것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매우 크다”

-누군가가 “감동은 선물 포장의 리본을 푸는 순간 시작된다”고 했는데 그 말에 동감하나?
“그렇다. 그것이 유명 브랜드일 경우 포장이 주는 감동은 최고다. ‘아… 나에게 브랜드 제품을 선물하다니!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게 틀림없어!’ 여기엔 선물 자체에 대한 감동 외에도 상대방이 매긴 나의 등급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자 안에 단순한 열쇠고리가 들어있더라도 일단 포장에서 감동을 받는다. 대신 브랜드가 아닐 경우에는 포장보다 내용물이 중요해진다. 만일 브랜드가 아닐 경우 열쇠고리를 받는다면 ‘어떻게 나한테 이런 걸 선물할 수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는가. 유명 브랜드의 이미지는 아름다움에 관련되어있다. 동네 금은방의 케이스에 담긴 금반지와 티파니의 하늘색 케이스에 담긴 금반지의 감동은 천지차이다. 그래서 럭셔리 브랜드들은 이 감동을 만들어내기 위해 광고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고 이들 제품에는 감동의 가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비싸다”

-그렇다면 브랜드 제품은 다 미적 감동과 가치로 평가되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소비사회다. 각각의 물건들은 같은 제품이라도 제작자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이들은 소비자의 심리적, 정서적 부분을 자극해 감동을 일으킨다. 누구든 감동의 상태에 있을 때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은 없다. 삶은 아름다워지고 행복감은 절정에 이른다. 롤렉스시계를 예를 들어보자. 롤렉스시계는 100년간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동그란 시계다. 디자인 면에서 보면 더 멋진 시계는 시장에 얼마든지 많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토록 롤렉스시계를 원하는가? 그것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불변성 때문이다. 이는 샤넬의 2.55가방이나 에르메스의 버킨백과도 마찬가지로 투자와 확신성에 관련된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복합적인 마케팅의 결과다. 롤렉스의 최근 광고를 보면 그들 스스로 ‘롤렉스시계는 투자입니다’고 말하고 있다. 이 광고가 나기 전에도 소비자들은 이미 롤렉스시계를 투자의 의미로 구입하고 있었고, 결국 이 광고는 소비자가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같은 불경기에 사람들은 돈을 쓰면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소비를 꺼려한다. 그런데 투자는 다르다. 즉 롤렉스시계는 소비가 아니라 투자라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롤렉스는 디자인의 오리지널리티나 패션의 이미지가 아닌 투자의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오리지널리티의 생명은 짧다. 대신 영원성과 불변함은 투자에 연결된다. 왜 요즘 같은 불경기에 샤넬이나 에르메스의 가방가격이 올랐을까? 이들은 지금 구입한 가방을 20년 후에 딸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비싸게 주고 사더라도 20년, 30년 뒤에 딸이 사용할 때는 이미 투자한 가치가 있는 상품으로 변할 것을 이들은 누구보다 잘 안다. 굳이 딸에게 물려주지 않더라도 20년 전에 산 제품이 아직도 매장에서 팔리고 있으며 자신이 산 가격보다 2배, 3배 오른 가격에 팔리고 있는 제품을 보면 투자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즉 시간이 지나도 불변하는 가치로 시간을 멈추게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디자이너는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소비자의 심리상태를 연구해야 한다. 현재 럭셔리 제품의 위치는 높이 올라가있고 그 안에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강하게 나타내는 몇 안 되는 대표상품들이 해마다 작은 변형으로 신상품화 되고 있다. 샤넬 2.55도, 롤렉스시계도 시간이 지나면서 부분적으로 시대에 맞게 변화되어왔다. 소비자들에게 제품의 가치를 느끼게 할 제품을 디자인해야 한다”

-하지만 이건 몇 안 되는 아주 희귀한 경우 아닌가?
“럭셔리 문화가 성숙한 사회에서는 모노그램이나 눈에 띄는 마크 등으로 마케팅하는 브랜드는 성공할 수 없다. 이런 브랜드들은 중국이나 브라질, 러시아 같은 신생 부국에서 자신이 얻은 부를 빠르게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는 사회에서 잘 통한다. 신생 부국의 소비자들의 취향은 아직 미숙하다. 대대로 부를 이어온 사람들은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브랜드들이 제작하는 모노그램 가방을 들지 않는다. 이들은 투자가치가 있는 제품을 구입하거나 아니면 최고의 장인정신으로 장시간 제작한 유일한 제품을 구입한다. 부자들 중에는 자신이 입거나 드는 물건은 눈에 띄지 않는 중저가 제품을 구입하는 대신 페라리를 구입하고 요트를 구입하고 별장을 몇 채씩 가지고 있거나 최고급 호텔에만 묵으며 여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럭셔리는 개인이 어디에서 필요를 느끼고 그에 대한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주얼리, 가방, 시계, 차 등 소비의 종류가 달라질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훌륭한 디자이너라면 모든 등급의 고객을 대상으로 베스트셀러가 될 동시대적인 제품 디자인과 동시에 먼 안목으로 스테디셀러가 될 제품도 디자인해야 한다. 이는 어려운 숙제지만 불가능한 숙제는 아니다”

* 인터뷰 내용에서 언급한 몇몇 브랜드와 나라 이름은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든 것이며 특별한 이해관계나 개인적 감정과는 관계없음을 밝힙니다.


/ 글: 김성희 디자이너 
  이태리 스텔라비 대표
  본지 객원기자



출처: 귀금속경제신문(www.diamond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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