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성희님 2-귀금속 경제신문


안녕하세요 김성희님! (2)
(jewelryask@gmail.com)



Q: 안녕하세요 김성희님.
저는 몇 달 전부터 서울 종로의 주얼리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는 박미정(가명) 입니다. 주얼리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꿈이어서 열심히 공부했고 운이 좋아 좋은 직장에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사장님이 해외의 잡지를 건네주시며 좋은 제품을 찾아서 카피를 하라고 하십니다. 제 아이디어로 그린 그림을 보여드려도 그냥 지금은 카피하고 나중에 디자인 하라고 하십니다.
카피하려고 디자이너 시작한 건 아닌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안녕하세요, 김성희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모방하다 보면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다.
? 모방해도 좋다는 말이냐구요? 절대 아닙니다.
제 이야기를 한 번 해 볼까요? 1993년에 한국보석학원에서 디자인, 감정, 세공 수업을 수료하고 당시 25명 정도의 직원이 근무하던 장위동 PJ 주얼리에 디자이너로 들어갔었습니다. 정직원은 아니었고, 하루 4시간만 일하는 아르바이트 형식이었습니다. 그림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내 디자인이 과연 팔릴 제품인지에 대한 아무 자신도 없었던 때였습니다. 사장님은 공장에서 새로 나오는 제품들을 그리라고 하셨고(요즘은 다 사진으로 찍죠)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종로에 나가서 시장조사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원본기사님이 데리고 다니면서 어느 회사 제품을 집중해서 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시장 조사를 나갈 때마다 머리 속으로 외우고 또 외워서 공장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당시 유행하던 이승연 메달이었습니다. 보고 와서 그린 그림이 히트 상품으로 팔렸는데 그 때 제가 생각한 것은 ", 내가 예쁘다고 생각한 물건이 히트상품으로 팔리는구나."였습니다. 한마디로 잘 팔릴 물건을 알아차렸다는 자신감과 내 심미안의 확인이었습니다. 그리고 6개월이 흐른 후에야 제 디자인을 만들어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로 유학오자마자 2주만에 비첸자 전시회를 방문했습니다. 종로에서 보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주얼리들로 가득해 뭐부터 봐야 할 지 조차 몰랐습니다. 하루 종일 다니면서 봐도 뭐가 뭔지 모를 정도였죠. 그 때만 해도 패션 중심의 이탈리아 주얼리와 예물 중심의 한국 주얼리의 스타일은 판이하게 달랐었습니다. 그래서 본 것을 그대로 그려봤었습니다. 새로운 스타일을 익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그러다가 비슷한 스타일의 다른 디자인을 해봤고 점점 제 디자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얼리 디자이너로 활동한 지 20년이 되가는 요즘은 이렇게 합니다. 무엇보다 비첸자와 바젤 등 주요 주얼리 트레이드 박람회에 꼭 참석해 현재의 주얼리 트랜드를 분석합니다. 트랜드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일단 디자인(, 곤충, 동물 등의 주제부분)이 가장 먼저 보입니다. 그리고 사용하는 보석(유색석의 단독, 혹은 멀티컬러로의 사용, 바로크나 원형 등 진주의 형태나 골드, 혹은 초콜릿 등 색상, 해마다 유행하는 보석-슬라이스 커런덤, 앤젤 스킨 코럴, 오팔, 슬라이스 다이아몬드 등), 디멘션(주얼리의 크기), 로디엄, 주얼리 형태(긴 목걸이, 샹들리에 이어링, 바 팔찌), 그 때 그 때 선호되는 제작 방식과 세팅 방식(프레 세팅, 마이크로 세팅) 등등이 동시대의 트랜드들이죠. 프랑스 주얼리 브랜드들의 하이주얼리는 트랜드라기 보다 작품으로 참고해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꼭 알아야 합니다. 물건을 볼 때는 겉의 디자인만 보지 말고 항상 뒤를 봐야 합니다. 안보이는 곳은 어떻게 처리했는지, 끝마무리는 얼마나 좋은지 등이죠.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수렴되어 머리속에 꾹 박혀 완전히 내 것이 되었을 때 새로운 디자인이 가능합니다. 내가 이전에 했던 디자인은 뭔지, 현재의 유행은 뭔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뭔지, 그리고 현재 보석과 금의 가격은 어떤지 등에 대한 자료조사가 된 후 소비자가 원하는 바로 그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뛰어난 디자이너는 있지만 타고나는 디자이너는 없습니다. 디자이너는 노력에 의해 생겨나는 사람입니다. 루이비통 주얼리 디자인을 하는 로렌스 보이머도 "매일 디자인해라" 라고 말했습니다. 독창적이며 아름답고 잘 팔리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면 일단 기존에 어떤 제품들이 있는지, 그 중에서도 잘 팔리는 제품은 뭔지 파악하는 안목을 키워야 합니다. 그 방법 중 가장 쉬운 것이 모방입니다. 하지만! 모방은 초창기에 배우는 사람이 해야 할 것이고 스스로가 프로 디자이너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모방은 버려야 할 나쁜 습관입니다. 모방을 하다보면 새로운 것을 디자인하지 못하게 됩니다.
귀경의 트랜드 잡지에 MIIORI라는 미국 회사 소개가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비첸자와 바젤 전시에서 항상 보던 회사여서 잡지도 소개할 겸, 인맥을 유지할 겸 잡지를 가져다 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잡지의 뒷부분에서 한국 모 회사에서 MIIORI의 제품을 복제한 사진이 발견되어 잡지를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MIIORI 회사의 부스에는 더 못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모방한 것도 아닌데 뭐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은 한국 주얼리 업계에 스스로 먹칠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한국 회사들이 외국 주얼리를 복제하는 이유는 그들이 모를 거라 생각해서지만 요즘같은 글로벌 시대에 버려야 할 생각입니다.
일단 지금은 초기 단계니까 사장님이 원하시는 대로 잘 팔릴 상품, 좋은 상품들을 먼저 체크해보세요. 그리고 만일 스타일은 맘에 드는데 우리 회사에 맞게, 아니면 부분적으로 더 예쁘게 변형해서 사장님께 프로포즈 해 보세요. 미정씨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되면 사장님도 모방 그만두시고 독자적인 새 디자인으로 만드실겁니다. 그러다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생기고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하는 회사, 그리고 그 회사의 디자이너로 인정받을겁니다. 사장님이 카피하라고 하시니까, 카피만 해도 월급은 나오니까 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면 결국 수동적인 3류 디자이너가 되고 맙니다. 기왕 시작한 직업인데 3류가 되면 안되겠죠?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사장님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면 그 때 다시 연락주세요.

얼마 전 미국의 애플 사와 삼성의 특허 침해 법정 투쟁의 결과 기억하시나요? 모방한 제품은 언젠간 드러나기 마련이고 제품의 수명은 길지 못합니다. 모방한 제품을 만든 회사에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도 어느 정도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위에서 시킨 일이니까 라고 대답하는 디자이너는 자기 자식을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부모와 같습니다. 내 디자인이 내 자식이라 생각하면 내 DNA가 들어간 주얼리를 창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겁니다.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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