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성희님 6-귀금속 경제신문
"안녕하세요 김성희님!"(6)
Q. 안녕하세요, 김성희님.
저는 10년째 주얼리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정선영(가명)이라고 합니다.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만큼 제가 하는 일에 자신이 있고, 어떤 디자인을 해야 잘 팔릴지를 알고 있어서 꾸준히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점점 제 자신이 매너리즘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것을 창작하기보다는 잘 팔리는 제품만 디자인하다보니 제 창작력에 한계를 느끼는 것 같기도 하구요. 리서치도 제가 하는 디자인에 관련된 것만 하게 됩니다. 일을 하시면서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A.안녕하세요, 김성희 입니다.
디자이너든 아티스트든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자신만의 고정된 스타일이 없고 어떤 것이든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넘쳐흐릅니다. 그래서 실험적인 디자인도 해보고 여기 저기 공모전에도 열심히 응모해봅니다. 리서치는 어디서 해야 할지를 몰라 사방팔방으로 헤매고 다니기 때문에 발이 바빠집니다. 홍콩이나 바젤, 비첸자 주얼리 박람회를 방문하면 그 규모에 일단 주눅이 들어 회사 이름도 기억 못하고 봐도 안 본 것 같고 그래서 가본 곳에 두세번씩 또 가보고,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잊기 전에 얼른 메모도 하고 그럽니다.
그렇게 몇 년을 하다보면 어느 매장, 어느 잡지에 내게 필요한 정보가 더 많은지, 어느 보석상의 쇼 윈도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어느 블로그에 신경을 써야 하는지 파악이 됩니다. 일주일을 꼬박 돌아도 다 못 보던 큰 박람회들도 이제는 하루 만에 돌아볼 수 있게 됩니다. 관심 없는 곳에는 아예 가지 않고 트렌드를 주도하는 회사들의 쇼 윈도우 앞에서도 신제품만 훑어보게 됩니다. 아무리 예쁘고 잘 만든 제품을 봐도 자기 시장에 맞는 제품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여러 번 공모전에 당선되다 보니 이젠 공모전에 출품하는 것 보다 심사위원이 되고 싶어집니다. 손님들이 좋아하는 디자인 스타일이나 사이즈와 형태, 가격대는 모두 내 손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디자인하는 것마다 제품으로 나오고 베스트셀러 디자이너라는 자부심에 목에 힘 꽉 들어갑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의 스타일이 한두가지에 한정되어 그 외의 것은 잘 못하는 절름발이 디자이너가 아닌가 생각되는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놀 물이 어딘지 몰라서 온 대양 구석구석을 헤엄치며 따뜻한 물은 어디인지, 먹이가 많은 곳은 어디인지 찾아 헤매던 물고기가 이제는 주변에 먹을 것과 좋은 것이 넘쳐나는 수족관에서 헤엄치며 더 이상 힘든 여행을 하지 않아도 된 격이 된 겁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양에서 놀던 개구리가 자신의 안전한 우물로 들어간 거죠.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모네, 고호, 루치오 폰타나, 칸딘스키 등 유명한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고 그 스타일 때문에 그들의 작품은 유명해지고 고가로 거래됩니다. 유명 브랜드들과 디자이너들의 주얼리도 그것이 디자인이든 광고 이미지든 상관없이 그들만의 특별한 스타일을 갖고 있습니다. 아티스트의 경우 대중에게 사랑받는 그만의 스타일을 갖기 시작하면 그것으로 평생 먹고 살 수도 있습니다. 스타일에 대한 연구는 그곳에서 멈추고 대신 부수적인 것, 즉 더 많이 팔 수 있는 상품적인 것을 제작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게 됩니다. 이것은 부자가 되더라도 창조자의 입장에서 보면 비극일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주얼리 분야는 예술가의 경우와 다르지만 한편으로는 그들도 마찬가지로 이미 확실하게 입증된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태여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스테판 웹스터의 스타일은 샤넬 스타일과 다른 것 같은) 이미지가 바뀐다는 것은 곧 고객이 바뀐다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디자이너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가 잘 팔수 있는 제품을 창작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디자이너는 대중적인 취향을 갖는 것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남들과 다른 생각, 다른 취향을 갖고 있다면 새롭고 독특한 디자인을 할지는 모르지만 대중성 있는 디자인을 하기는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창작력을 몰라주는 대중이 원망스러워집니다. 그렇다면 항상 대중성 있는 디자인만 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창작력을 잃지 않도록 제품으로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어 스스로가 놀랄 정도의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영씨의 경우 이미 잘 팔리는 디자인을 하고 있으니 혹시라도 평소에 하고 싶었던 디자인인데 팔릴 것 같지 않아 접어뒀던 아이디어가 있다면 자신을 위해 한 번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90년대 초, 제가 한국보석학원에서 디자인을 공부할 때 배형순 회장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네가 무명일 때는 남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그러다가 네가 유명해 지면 그 땐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늦지 않다”
그 날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이 뭔지 항상 기억해둬야 합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면 놓치지 말고 잡아야 합니다. 그런 기회가 오지 않는다면 만들어야 합니다. 디자이너란 항상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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