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성희님 17

안녕하세요 김성희님 ! (17)




이메일( jewelryask@gmail.com)
등록일 : 2013.06.18

Q. 안녕하세요 김성희님.

저는 대학에서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하고 졸업 후 한국 주얼리 브랜드 회사에 입사해 주얼리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배움의 폭을 넓히고자 지난 해 주얼리 마케팅 마스터 코스를 좋은 성적을 받으며 마쳤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외국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싶어 미국 회사에 의뢰를 했고 멋지게도 그들이 저를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정식 사원으로 입사하는 것이 아니어서 비자를 받을 수가 없었고 학생비자로 가자니 부족한 부분이 많아 미국행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나 파리 등 유럽은 관광비자로 3개월간 체류할 수 있다고 해서 유럽의 디자이너들이 운영하는 스튜디오에서 일을 하면 많이 배울 수 있고 제 경력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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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안녕하세요 김성희입니다.

 
저는 1998년 여름에 밀라노 에우로페오를 졸업한 직후 당시 런던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한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도와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고객들은 중동국가와 인도의 주얼리 제작회사들이었는데 그녀가 아이디어를 내면 제가 렌더링을 마무리하는 일을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밀라노에서 작업해서 우편으로 보냈었지만 나중에는 런던에서 3개월간 지내며 그녀의 스튜디오에서 함께 디자인했었습니다.

고객은 그녀가 다 만나고 저는 그녀의 아이디어를 예쁘게 렌더링하고 우편을 보내는 일을 했죠.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저 역시 곁눈질로 일을 배웠고 동시에 런던에 3개월 정도 살면서 영어도 늘고 박물관에서 리서치도 맘껏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저의 존재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고 저를 고용했던 디자이너는 어시스턴트까지 둔 유능한 디자이너로 자리잡았습니다. 속이 상했죠. 그래도 당시 아무 일도 없던 저는 그 일을 고맙게 여기며 열심히 했고 일요일에도 사무실에 나가 책과 잡지를 보며 아이디어를 내곤 했었습니다.

밀라노에 돌아온 후에도 그녀는 일이 있을 때마다 연락해서 렌더링을 시켰고 저는 열심히 해줬죠. 일한 날만큼 수당을 받았기 때문에 그녀는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일을 해주길 원했고 저는 일을 끝내기 위해 밤을 새는 적도 많았지만 ‘나도 언젠가는 유능한 디자이너가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버텼었습니다. 그러다가 다미아니에 입사하게 되어 그녀의 일은 기다렸다는 듯 끊었습니다. 그녀는 저만큼 렌더링이 뛰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제게 연락을 해왔지만 저는 다미아니에 다닌다는 이유로 더이상 스튜디오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속이 다 후련하더군요.

제가 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제게도 많은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들이 다녀갔고 대부분의 협동작업은 한 번의 공동작업으로 끝났습니다. 한 번은 파리의 유명한 주얼리 디자이너 스튜디오에서 몇 달간 일을 한 디자이너의 면접을 봤는데 이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에 당시 유명한 귀걸이가 있었습니다. 이걸 네가 했냐 물으니 그렇다고 하면서 그 유명한 디자이너의 스튜디오에서 일할 때 그린건데 자신의 ‘허락’도 없이 그 디자인을 자기 컬렉션에 썼다며 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군요. 그 디자이너는 면접 이후 다신 보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지 저만 느끼는 디자인 스튜디오의 에피소드는 아닐겁니다. 디자인 스튜디오의 일은 그 스튜디오에 몇 명의 디자이너가 있건, 직원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건 간에 대표 디자이너가 모든 명예와 존경을 한 몸에 받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소속 디자이너들은 오래 머물지 않고 이직이 잦으며 또한 불평과 불만이 많습니다. 물론 많은 일을 배우기는 할겁니다. 하지만 디자이너라면 자신의 디자인 스타일과 영업 스타일을 개발하는 것이 다른 디자이너의 방식을 베끼거나 따라하는 것 보다 낫지 않을까요?

디자인 스튜디오의 일은 큰 회사의 일보다 다양하고 배울 점이 많은 만큼 그에 합당한 어시스턴트가 요구됩니다. 제 경우 동시다발적으로 일을 많이 할 때는 영어, 한국어, 이탈리아어가 가능하고 컴퓨터를 잘 다루며 여러 회사에 연락해 자료를 받을 줄도 알고 디자인도 잘 하고, 또한 심부름도 할 줄 아는 어시스턴트를 절실히 그리워하곤 하는데 그런 능력있는 사람이 저같은 작은 스튜디오에서 일을 할까요?

세상의 누구든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을 틀렸다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보다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더 필요로 합니다. 자신의 경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회사에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하고 열심히 하다보면 특별히 의도하지 않더라도 많이 배우고 경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과는 같습니다만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에 일에 임하는 자세 또한 달라지게 됩니다.

주얼리는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나 건축 사무소와 다르기 때문에 많은 디자이너가 활동하는 스튜디오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겁니다. 이탈리아의 많은 디자이너들도 요즘같은 불경기에는 혼자 활동하기도 버거워하는 실정입니다. 굳이 외국 회사의 경험을 쌓고 싶다면 이곳저곳 연락해 보는 것도 좋겠지만 자신의 경험을 위해 몇 달간만 머물다 갈 외국인을 써줄 자원봉사형 디자인 스튜디오는 많지 않을 겁니다.

/ 주얼리 디자이너
  이태리 스텔라-비 대표
  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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