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성희님 13

안녕하세요 김성희님 ! (13)




등록일 : 2013.03.26


Q.안녕하세요 김성희님.

저는 디자이너의 길을 가기 위해 캐드를 시작한 박호영(가명)입니다. 귀금속경제신문을 통해 좋은 말씀 잘 읽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주얼리 디자인시 라이노캐드보다 매트릭스(Matrix)라는 프로그램을 더 많이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이 라이노캐드보다 더 활용도가 높은지, 실용성이나 기능면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매트릭스를 사용할 경우 능력을 더 알아주는지, 외국의 현장 분위기를 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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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안녕하세요 김성희입니다.

라이노 프로그램과 달리 매트릭스7은 주얼리 캐드 디자인만을 위해 제작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원하는 디자인을 훨씬 더 빠르고, 유용하고 쉽게 컴퓨터상에서 디자인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있습니다. 제작에 사용될 다이아몬드의 개수와 캐럿을 알려줌은 물론 단숨에 파베스톤을 표면에 박기도 하고 소비자가 가져온 보석을 그대로 캐드로 옮겨 리스타일링도 할 수 있습니다. 최종소비자에게 디자인을 실제품처럼 소개할 수 있어 디자인 스튜디오 뿐만이 아니라 매장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매트릭스7은 아직까지 윈도우용으로만 프로그램이 제작되었는데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도움을 받으면 맥에서도 사용 가능합니다.

문제는 가격입니다. 약 6천유로(약 9백만원)를 호가하는 프로그램이라 회사는 물론 디자이너가 개인적으로 선뜻 구입하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입니다. 다행히 유럽의 유통업자들은 6개월에서 5년까지 장기간 할부판매를 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사람들은 장기 투자의 목적으로 구입하기도 합니다.

이탈리아의 회사들을 일일이 방문해보지 않아서 디자인을 위해 라이노 프로그램을 선호하는지 매트릭스를 선호하는지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유통업자는 무조건 많이 팔았다고는 하지만 누가 사갔는지는 절대 말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용하기 쉽기때문에 많은 회사들이 구입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서 아직도 선호하는 ‘디자인 방법’은 역시 핸드 드로잉입니다. 핸드 드로잉(스케치와 렌더링)실력이 뛰어난 디자이너는 종이와 펜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빠른 시간 내에 원하는 디자인을 실물처럼 그려낼 수 있습니다.

주얼리디자이너가 직업으로 자리잡은 것은 길어야 2세기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전에는 제작자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제작했었습니다. 그 유명한 르네 라릭, 알퐁스 무하, 벤베누토 첼리니 등도 자신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제작했습니다. 그에 비해 주얼리 제작의 역사는 7천년 이상이나 됩니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주얼리 제작자라는 직업이 20세기 말 기술발전의 영향으로 실종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프로토타이핑 컴퓨터 프로그램이 개발된 후 디자이너가 샘플 제작자를, 혹은 샘플 제작자가 디자이너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IT강국에 살아서 그런지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많이 의존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래서 디자이너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바로 컴퓨터 탓을 합니다. “유럽 디자인이 멋진 이유는 매트릭스를 사용해서야, 근데 나는 다른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때문에 유럽식의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없어. 프로그램이 좋아야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는데말이지” 아니면 “여러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어야 디자이너로 취업이 잘 될텐데 난 하나밖에 모르니 빨리 다른 프로그램 사용법을 배워야겠어” 혹은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는데 컴퓨터가 없으니 디자인을 못하고 있네” 라고 말이죠.

90년대까지 한국의 주얼리디자이너들은 자신의 부틱을 운영하며 작가겸 디자이너로 활동하거나 혹은 대기업에서 웨딩 반지 등을 디자인했었습니다. 작가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은 앞치마를 두르고 작업대에서 톱질하는 사진을 자신의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했고 그들의 주얼리는 공방에서 직접 제작한 핸드메이드 제품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홍보했었습니다. 당시 많은 캐스팅 회사들은 디자이너를 따로 두지 않고 잡지에 나온 다른 회사의 제품사진을 보고 샘플 제작자와 함께 약간씩 변형해서 새로 제작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가 IMF 이후 주얼리 수출이 증가하고 수입 자율화로 인해 외국 제품을 쉽게 접하게 되면서 주얼리 제작 회사들은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필수적으로 디자이너를 고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에도 주얼리 디자인과가 생겼고 주얼리 디자인반을 둔 학원도 많아졌습니다. 주얼리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긴지 10년만에 손작업을 가르치던 교육이 컴퓨터화되었습니다. 시각적으로 실물을 보는 듯한 컴퓨터 효과에 손작업이 두 손 들었습니다. 프로토타입 제작 기계가 도입되면서 많은 샘플 제작자들은 직장을 잃었고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 인건비를 내렸습니다. 프로토타입 기계를 사용하기 위해 디자이너는 창작력 외에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는 또다른 기술을 익혀야 했습니다. 그래서 핸드 드로잉을 잘 못해도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루면 주얼리디자이너라는 명함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런 짧은 주얼리 디자인 역사를 읽을 때 뭔가 안타까운 느낌이 드는 것은 저만이 아닐겁니다.

유능한 샘플 제작자는 핸드 드로잉만 봐도 금방 어떻게 제작해야 할 지 압니다. 오히려 디자이너의 실수를 그의 경력으로 커버해줍니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혼자 고민하지 않고 다년의 경력을 가진 샘플 제작자에게 조언을 구하며 완벽한 디자인 팀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핸드메이드 장인정신을 고집하는 유럽 회사들은 컴퓨터 캐드로 디자인해 기계가 제작해낸 샘플보다 몇백시간이 걸려도 수작업으로 재작된 제품을 선호합니다. 반클리프 아펠이나 까르띠에, 부쉐론의 사이트에만 들어가봐도 디자이너들이 수채로 그림그리는 모습을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얼리 전시회에 참여한 이탈리아 회사들은 바이어들에게 자신들이 개발 중인 새로운 제품의 핸드 드로잉 디자인을 보여주며 홍보합니다. 컴퓨터 그래픽은 제작의 수단으로 사용되지 창작의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21세기의 기술이 아무리 혁신적으로 발달했더라도 아직은 기계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해 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창작력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둔다면 어디에 더 중점을 두고 자신의 능력을 키워야 할 지 바로 알 수 있을겁니다. 컴퓨터를 해결사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디자이너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주얼리 디자이너
  이태리 스텔라-비 대표
  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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